['생태계 보물섬, 제주' 그 百年의 기록<16>]
제주가치 찾아 한라산 3백여회 답사
제1부/제주식물 세계화 100년 <15>-한라산 박사 부종휴의 발자취를 찾아서(1)
제주가치 찾아 한라산 3백여회 답사미기록종 수백종 발견 제주식물연구 초석
만장굴·빌레못굴 발견·고고학 연구에도 헌신
1973년엔 道문화상 수상…업적불구 조명안돼
[부종휴 특집에 들어가며]본보, 선생의 발자취 집중 재조명
부종휴(1926∼1980)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올해로 벌써 25년이 훌쩍 지났다. 그는 광복 이후 식물과 동굴, 고고학,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자랑스런 제주인이다. 수백종의 미기록식물을 찾아냈고 세계 최장의 만장굴을 답사해 세상에 처음 알린 인물이 바로 부종휴다. 그는 진정으로 제주와 한라산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를 알고 있거나 기억하는 제주인들은 몇이나 될까. 안타깝게도 부종휴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의 족적도 지워지고 묻혀버리고 있다.
본보가 부종휴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취재진은 부종휴의 유족과, 동료 및 제자·후학들의 증언, 그가 남긴 몇 편의 보고서와 육필, 그리고 생전 신문지상 등에 실린 인터뷰와 기사 내용들을 중심으로 발자취를 찾아 나섰다. 생전의 생생한 활동모습도 부종휴의 가족으로부터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는 부종휴에 관한 일부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부 선생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본보는 부종휴 특집시리즈를 5회 연재한다.
한라산과 제주식물 연구, 용암동굴 개척에 평생을 바친 한산(漢山) 부종휴. 한라산과 제주땅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고 그 족적들은 제주의 자연과 생태계 연구에 디딤돌을 놓았다.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미기록 식물을 찾아내 제주식물분류학의 기초를 닦았고 한라산에 숨겨진 자원은 그를 통해 빛을 발했다. 제주대 김문홍교수(생명과학부)는 “부종휴 선생이야말로 제주출신으로 한라산 식물연구의 원조”라고 평가한다.
서울대 박종욱교수(생명과학부)는 70년대 부친 박만규박사(작고)와 함께 부종휴선생을 따라 식물조사를 다녔던 기억을 들려준다. “부종휴 만큼 제주식물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참으로 대단한 분이셨다. 부선생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만장굴, 빌레못 등 세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제주의 용암동굴과 그 속에 잠자고 있던 역사·고고유물들이 그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부종휴가 만장굴을 찾아 어린이탐사단을 이끌고 최초 답사한 것이 광복 이듬해인 1946년의 일이다.
부종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사진작가 서재철씨(자연사랑 대표). “한라산에 오르면 노루보다 빨랐다. 숲을 헤치고 다니며 무슨 풀이든 뽑아들면 그 식물 이름을 주저없이 가르쳐주는 식물박사였다. 그는 제주에 산악운동을 조기에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지하의 동굴속에 들어가면 박쥐처럼 시커먼 동굴속을 잘도 헤집고 다녀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동굴이 없었다. 부종휴선생은 진정으로 한라산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업적이 묻혀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국일보 1974년 5월 12일자 일요판에는 ‘八道奇人傳’이 실렸다. ‘기인’은 ‘제주의 식물채집가, 부종휴’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일보 서울본사 독자정보센터측은 취재진의 요청에 당시의 보도내용을 찾아 제공했다.
‘잠시 정원에 나갔다 오겠다며 오밤중에 홀연히 집을 나간 사람이 보름이고 한달이고 돌아오지 않는다. 놀란 가족들은 실종신고를 내고 온섬을 수색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다보면 풀포기와 돌조각들을 등작에 가득히 짊어지고 또 홀연히 나타난다. 그가 말한 정원은 바로 한라산인 것이다.’
부종휴를 인터뷰한 사람은 원로 언론인 허태헌씨(작고). ‘식물을 뒤지면서 30년간 부씨는 제주섬을 돌기를 7백여회, 정원나들듯 한라산을 오르내리기를 지난 4월 15일(1974년)로 2백98회를 기록했다. 그동안 제주의 미기록식물을 찾아낸 것만 4백여종, 동굴도 11개에 이른다. 이런 공로로 제주도문화상을 수상했고 그를 알아주는 이는 ‘관직없는 제주의 기인지사(奇人知事)’라고도 한다.’
제주의 자연을 사랑한 부종휴는 음악을 사랑하고 낭만, 감성을 잃지않은 ‘자유인’의 삶을 살고자 했다. 북제주군 구좌읍 중산간 비치미오름 남사면에는 부종휴가 잠들어 있다. 그 묘비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산과 식물, 커피와 파이프, 브람스와 카메라, 그리고 한라산을 진정으로 사랑하셨던 분….’
제주도 오름답사기를 남긴 김종철은 그의 명저 ‘오름나그네’(1995) 비치미오름 편에서 부종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담아 그를 그리워했다.
‘漢山(부종휴)은 오래 전부터 산행을 더불었던 舊友이다. 그의 식물학계에 기여한 공적은 주지의 사실이며 초중고 교사, 대학 강사, 만장굴·빌레못굴 발견, 제주도문화상 수상 등 묘비에 새겨진 생전의 발자취만 보아도 아아, 이 사람이 그 사람이로구나 할 만큼 이름을 남기고 간 사람이다. 어느 산마루에서 흰진달래를 발견하고는, 이건 미기록이다! 기뻐 날뛰기도 하던 그였다.’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에서 출생한 부종휴는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김녕초등학교, 김녕중학교 교사를 거쳐 제주농업학교, 신성여고, 제주사범학교와 부산대 약대, 서울대 약대, 의과대, 제주대에서 조교 및 연구원, 강사 등으로 재직한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던 그는 직장을 수시로 옮겨 ‘1年草’라는 별명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의 무대는 직장이 아닌 항상 한라산과 제주땅이었다. 그는 기인처럼, 때로는 자유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발자취는 상당부분 가려져 있거나 퇴색된채 지워지고 있다. 부종휴가 천성적으로 기록으로 남기는데 인색했던 이유도 있지만 그를 제대로 조명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흔한 공적비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매우 애석해 한다.
제주산악계의 산증인인 안흥찬옹(73)은 지금도 부종휴를 또렷이 기억한다. 안흥찬과 부종휴는 제주산악회 태동의 주역들이다.
“입신출세에 욕심이 없어 명예욕이나 물욕과는 원체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 식물, 동굴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고…참으로 다방면에 소질이 많은 사람이었어. 나하고는 이래저래 인연이 많았는데. 부선생을 위해 뭔가 해야할 텐데. 부 선생이 무척 그리워지네 그려.”
그는 20세기 제주가 낳은 걸출한 인물이었다. 1973년 그에게 안겨진 제주도문화상은 그의 업적에 대한 소박한 보상이었다. 강시영기자
(이 내용은 한라일보 6월23일자 11면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