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벌써 세번째이다.
처음은 다랑쉬와 아끈다랑쉬..그리고 다랑쉬굴을 찾아 갔었고
두번째는 좌보미와 백약이를 함께 동행했다.첫눈 오는 오늘은 12월 7일
그동안 토요일만 탐사했었는데
오늘부터는 일요일로 변경되고. 도시락도 지급해 준다.
9시 한라일보 앞에서 만나기는 여느때나 다름없다.
갑자기 너무 많이 추워져서인지
오늘은 게스트로 참여하는 일반인이 나 한사람 뿐이다.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심심치 않게 내리는 싸락눈이 종일 가슴설레게 하는 날이었다.
야사모의 야책님 대천동 사거리에서 합류하시고
오늘 참여인원이 20여명이 되나?
모처럼 단촐한 움직임이다. 여성은 나 혼자이다.
꿩엿공장 마당에 자동차 한 대 주차시켜놓고는
이승만 별장이었던 귀빈사로 들어가서 민오름을 올랐다.
짙은 삼림숲.
정상은 말굽형 분화구의 민둥산이다.
오늘 오름정상에 부는 바람은
즐기기엔 버거운 바람이다.
귀를 에일 듯이 싸늘하고, 겨울장갑을 낀 손이 시려온다.
간간이 휘몰아치는 싸락눈이
겨울산행의 맛갈스러움을 보탠다.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촐랑거리게 만든다.
첫 눈..첫 눈..올 겨울의 첫 눈인 거다...
탐사팀의 길 안내는
언제나처럼 오문필대장님이다.
산행시는 비고 100m당 기온이 0.7도 하락하고
풍속 1m당1도가 하락한단다...그래서 산행시는 출발지의 날씨에 비해 따뜻한 옷차림을 해야 하며 체온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말씀 하신다. 체온 1도 하락시엔 회복불능 상태가 되어 버린단다.
첫 인상은 상당히 까다롭게 뵈더니...몇번 뵙고 익숙해지니 생각보다 재미있으신 분이다.
-아니..말씀 좀 물읍시다...오늘 같은 날, 집에서 드라마나 보면서 노는 게 좋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추운데 나오세요?-
-전 드라마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첫눈을 방에서 바라만 보며 지내면 좋을게 뭐가 있어요..오름에서 첫눈 맞으니 좋지 않아요?-
맞다..지난번 백약이에서도 꼭 같은 질문을 하셨었다.
난 식물조사팀인 강영제님만 졸졸 따라 다닌다.
궁금한 것..이것저것 귀찮게 질문해도 자세한 설명을 꼭 곁들여 주시거니와 성가셔 하는 눈치가 없다.
난 완전히 개인교습이다. 이건 정말 신나는 일인 것이다.
오늘은 간간이 버섯도 보인다.
요새 좀 비가 내리니 겨울이라 비록 춥긴 하지만
때늦은 버섯들이 피어 오른 것이다.
능선을 돌고돌아 분화구도 내려가보고...
사진찍으랴...강영제님 발자취 따라 쫓아다니랴...
반은 튀어다녔지만
그래도 평상시 오름 다닐 때와는 다른
그 무언가를 찾으려고 나름대로는 마음 쓰는 시간이었지 않나 싶다.
찔레나무가지 끝에 메뚜기 한마리가 죽은채 꽂혀 있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있노라니
조류를 전공하신 김 완병님이 때까치의 먹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난 가지끝에 몸이 다쳐 이리 죽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때까치라는 이름의 새가 먹다남은 먹이를 이런 방법으로 저장한다는 거다.
민오름 정상부의 바위덩이들은 용암이 분출했던 흔적이란다.
용암은 통상적으로 알 듯 오름의 정상에서만 분출하는 게 아니라
옆에서 나오다가 흐름이 멎으면 멎은 후의 용암이 그냥 굳어 바위로 남는다는 것이다..
..강영제님..왈...-본듯이 잘도 알아......-
놀리신다.
지도상에 작은돌임이로 표기된 오름을 돌아...
정상 부위의 바위가 왜 이렇게 존재하는지...정차연박사님께 자세한 설명을 들었지만
나쁜 머리로 별로 남아 있는게 없고
비치미오름에서 마른 잔디가 깔린듯한 민둥산이지만
마치 잔물결이 일듯...능선이 물결진 모습을 왜 이러냐고 야책님이 질문하셨다.
'표행'이란다. 한마디로 지표의 이동흔적이란 거다.
옛날 무덤을 파서 이장하려고 보면 봉분아래 시체가 있지 않고 엉뚱한 곳에 가 있는 걸 종종 겪는데 이런 현상이라는 거다
지표가 움직이는 흔적이란 건 첨 듣는 이야기다.
숲이 우거지면 지표이동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킬수 있지만
민둥산이 경우 생각보다 이동이 많단다.
이렇게 움직임을 지속하다가 결국 수만년의 세월이 흐르게 되면 점점 낮아져서 사라진다는 결론이다.
아....그렇구나...
비치미 오름의 '치'자가 비껴돌아갈 '치'이라 결국 비치미가 큰돌임이 아니겠느냐는 이름의 해석들을 해 보며
개오름을 올랐다
원추형으로만 알고 있던 개오름..
솥뚜껑 '개'자란다. 솥뚜껑손잡이를 닮은 오름이라는 것이다.
끈적끈적한 점성이 매우 높은 용암이 분출한 오름이라서
원래의 분화구를 메웠지만 점성이 높은 탓으로 흐르지 못하고 종상으로 분출된채 굳어서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는 설명을 하신다.
망치로 암석을 깨 보시고 암석에 포함된 성분들을 간간이 읽으시고는 그에 따른 유추해석들을 금방 내 놓으신다..
모든게 신기하다.
민오름..돌임이..비치미..개오름에 이르는 오름구조선이 천미천의 흐름을 막아 90도 회전하여 물길이 흐르게 만들었단다.
개오름을 내려서는 천미천을 거슬러 올랐다.
성불오름옆 꿩엿공장의 자동차까지 간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매미에 회손된 천미천은 수십만년..지표의 변화를 한눈에 그리게 드러내고 있었다.
새끼줄 모양의 줄무늬가 있는 파호이호이 용암층과
그 위를 덥고 있는 토양층..
그리고 다시 수만년이 세월이 흘러 다시 일어난 화산분출의 흔적...
내 눈엔 마치 시루떡처럼 층층이 다른 바위와 흙이 번갈아 포개진 모습 정도로 보이는데,
지질학자의 눈에선 억겁의 세월과 그 진행과정...그에 담긴 이야기들이
마치 바람에 날려 나부끼는 낙엽 하나의 모습까지도 잡아낼 듯 ...
놓치지 않고 설명하신다.
내가 아는 노지질학자의 제자분이시다.
희끗한 머리에 가냘픈 몸으로 한라산을 구석구석 훓고다니시던 분,
식물과 버섯만을 들여다보던 내게 지질의 역사...대지의 형성과정등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 주신 분....
윤 선 교수님이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30여년 한라산을 연구하다가 이제 제자에게 일임하신다며 쓸쓸해 하시던 모습이
오늘 초겨울 아린 첫눈발 속에서 떠오른다.
긴 꼬투리가 터져서 솜털같은 씨앗이 바람에 날리는 마삭줄,
폐원이 된 하우스와 복분자밭이 되어버린 예전에는 농사지었을 땅.
저절로 나고 자라다 시들어가는 듯한 호박덩굴,
오후 네시가 되도록 탐사팀을 따라 맨 뒤로 쳐지며 쫓아다녔지만
피곤한줄도 추운줄도 잊어버린 신나는 하루였다.
꿩엿공장에서 따뜻한 자판기 커피 한잔 얻어마시며
하루의 탐사를 마감하고, 다음주엔 다시 오리라..마음 먹으며 정박사님 자동차를 얻어타고 제주시로 돌아왔다.
내내 잠들었었다.
정박사님..아마..내가 입벌리고 침흘리는 것..모두 다 보아버리신 거 같다....
에구........팔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