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는 아침이면
오늘은 무슨 핑계를 대고 약속 펑크낼까...고민을 합니다.
아프다고 할까....
갑자기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할까...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이부자리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사뭇 아쉬워
언제나 그렇듯이 5분 쯤 방을 서성이며 망서립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후회 할 걸 알기에
오늘도 어김없이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 오름으로 향합니다.
무지 추운 날입니다.이젠 친숙해진 한라탐사단 여러님들.
반가이 맞아주시는 아침의 활기..
지난 번 답사일지에 대해 부끄러울 만큼의 칭찬을 듣고
어깨가 으쓱해 집니다...
나이가 들어도 칭찬은 되게 기분 좋은 일입니다.
오늘 탐사는 오대장님이 안 계십니다.
거슨새미....저도 처음가는 오름인데 모두들 길 찾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바다로 향하지 않고 산쪽으로 거슬러 흐른다는 샘은 찾아보지 못하고
한씨 가족묘지 안에서 옹기종기 둘러 섰습니다.
풍수 전공하신 신영대 선생님의 좌청룡, 우백호, 강의...
왜 이곳이 사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될 수 밖에 없는 명당자리인지...자세한 설명을 해 주십니다.
문관석과 무관석은 좌우로 같이 앉혀진다는 것, 심부름하고 벗할 동자석이 세워져 있고, 촛대석까지 세워진 걸 보면
그래도 한 때는 그 시절을 풍미했을 어느 어르신이 우리 일행을 말 없이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쇠발자욱으로 깊게 패인 오름 능선을 오릅니다.
가랑비와 진눈깨비가 섞여 바람에 흩날립니다.
아침부터 내린 빗방울 때문에 산행이 어려울 것이라 지레짐작한 내 옷차림은 영 불량합니다.
찬바람이 속살까지 파고 듭니다.
한낮이 가까와 갈수록 빗방울보다는 눈으로 바뀌어 간다는 데에 그나마 안도를 합니다.
정상에 오르니 아부오름 분화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비고보다 분화구의 깊이가 더 깊다는 아부오름, 원래 아부오름의 분화구는 큰 분화구일 것이나
그후 다시 형성된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 때문에 지하에 묻혔을 것이라는 정박사님의 강의를 듣습니다.
제주도라는 섬 자체가 하나의 화산이라 볼 수 있다 하시며,
한꺼번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오름군이라는 겁니다.
앞에 바라보이는 다랑쉬나 체오름등 오름의 형체가 반듯하게 잘 보존된 오름은
가장 최근에 형성되어 화산구조가 가장 잘 보이는 오름이라 합니다.
제주도는 스코리아의 발달로 비가 오면 흐르지 않고 그냥 흡수되어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에
뭍에는 건천이 생기는 이유이고, 대신 지하수가 풍부해지는 것이랍니다.
제주라는 조그마한 땅덩어리 아래, 어찌 퍼내도 퍼내도 끝없이 물이 나오는지...
설명을 듣고보니 정말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아하....그렇구나.'
한겨울의 이런 날씨에도 제비꽃이며 잔대, 쇠채,민들레아제비, 쑥부쟁이등이 아직 피어 있습니다.
치마버섯과 이름모를 다른 버섯들도 피어 있는게 보입니다.
사진 찍다보니..나만 점점 쳐집니다.
4~5년생 소나무들 수 십그루가 뿌리가 캐져 검은 비닐봉지에 싸인채 말라 죽어가는 것들이 발견됩니다.
뽑아 놓기만 하고는 잊었는지 귀찮았는지, 그냥 내버린 모양입니다. 동물이던 식물이던 생명은 귀한 것인데....
우쒸~~나쁜 **
안돌을 거쳐 밖돌오름으로 들어가니 오름 중간중간에서 더운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것이 보입니다.
들여다보니 지하 깊은 곳으로 연결되어 있는 폭이 약 120cm, 높이 약 150cm정도인, 인공의 느낌도 가미된 굴이랍니다.
지하 깊은 곳의 굴 속은 평균온도 17~18도의 온도가 항상 유지된다고 합니다.
지상의 온도가 아주 낮으니까 더운 바람이 새어나와 따뜻한 기온과 축축한 습도를 유지해서,
굴 주변에는 풀고사리와 돌담고사리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동굴 근처는 참 신기하게도 때죽나무 잎이 아직 연록색으로 많이 남아 있고, 꽃도 피어 있습니다.
말굽형 분화구 따라 때죽나무, 예덕나무, 굴피나무등이 안정된 식생을 유지하고 있어 아주 울창한 느낌을 전합니다.
밖돌오름 속에 있다는 '당'을 찾아 분화구를 거슬러 오르며, 새 잎이 돋아나는 상사화의 무리를 보고,
아직도 단장이 잘 되어 있는 샘도 만납니다.
당오름의 당신은 금백조라는 여신인데, 제주도 당신의 원조로 제주도 각 지역의 수호신들은
대부분 금백조의 자손들이라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당오름이 워낙 큰 당이라 쉽게 드나들기 힘든 마을 사람들이 본향당 대신
밖돌오름안에 있는 이 당을 주로 찾아와 소원을 빌고 풍년을 기원했을 것이라는 추론들을 합니다.
타다 남은 초와 시멘트로 만들어진 검소한 단, 여늬 당처럼 우람한 당목이 없이
그냥 삼나무 서너그루 가까이 있을 뿐, 소박함을 벗어나 초라한 분위기입니다.
밖돌오름을 내려와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체오름을 올랐습니다. 오름 서사면, 가장 가파른 곳으로 바람을 등지고 오르는데,
시든 억새와 띠가 바람에 물결치며 장관을 보여줍니다.
거친오름과의 사이에 몰순이못이 지난 여름의 푸르름을 감추고, 흐린 물빛으로 들어앉아 있는 것이 한 눈에 보입니다.
보호종인 순채 군락지라고 알려졌다는데, 오늘은 관찰해 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라바채널'에 대한 설명을 정박사님께 듣습니다.
용암이 흘렀던 길이 양 옆은 먼저 굳어서 계곡이 형성된 '용암유로'라고 합니다.
체오름 동쪽으로 16번 도로까지 길게 형성되어 울창한 나무들이 긴 띠를 이루고 있습니다.
제작년 '루사'로 무너지기 시작한 체오름 분화구가,
올해 불었던 태풍 '매미'로 훼손이 가속화 되어 있어 탐사 일행을 안타깝게 합니다.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사스래피나무등 상록수가 극상림을 이루고 있어 언제 봐도 아름다운 오름인데,
이미 부서지기 시작한 스코리아는 나무뿌리의 힘만으로는 이제 그 무너짐을 막을 도리가 없나 봅니다.
안타까운 마음이야 가슴가득 하지만....생명의 나고 자람은 역시 자연의 섭리 아닐런지........
무너진 저 자리를 다시 새로운 식물들이 뿌리 내리고, 하루빨리 짙뿌른 녹음으로 덮여 가기를 바라며 늦은 4시 탐사를 마치고 제주시로 향합니다....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