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의 한라산 탐사
14일 오후 3시 영실을 출발하여 수행굴 ~선작지왓~백록샘~붉은오름~윗세오름에 도착했다. 다른 일행은 백록샘에서 노루샘으로 이동한 후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했는데 시계침은 저녁 8시를 가리켰다. 탐사에 동참하지 못하는 이가 부쳐준 반찬과 일행들이 가져 온 부식거리를 합치니 금방 진수성찬이다. 산중이라서 더욱 꿀맛이다.
15일 오전 5시 50분에 기상. 어제저녁 남은 밥으로 만든 야채죽 등이 역시 최고의 맛이다.
곧바로 장구목 능선을 따라 서북벽에 당도하여 한라산 산체를 우러러보니 오늘 탐사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듯 해맑은 모습이다. 소나기 예보를 무색하리 만치 지금까지 한라산은 선작지왓이니 붉은오름 장구목 등 모든 것을 아낌없이 탐사팀에게 보여주었다. 밧줄을 타고 조면암질의 벽면을 오르니 백록담이 태고의 모습으로 그 곳에 있었다. 1700년대 전반에 제작된「탐라지도병서(耽羅地圖幷序)」와「제주지도(濟州地圖)」,
1841년 제작된「탐라지도병지(耽羅地圖幷識)의 한라산 위치에 구봉암(九峯岩)이란 표기가 있다.
1872년「제주삼읍전도(濟州三邑全圖)」
1899년「제주군읍지(濟州郡邑誌)」에도 구봉암이 나타난다.
다만 김정호가
1861년 제작한「동여도(東輿圖)」`제주도 지도'를 보면 한라산 정상부근에 구봉암이란 지명대신 `십성대(十星坮)’란 지명이 표기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구봉암의 의미는 무엇일까.
백록담 분화구에 우뚝우뚝한 봉우리가 아홉 개라는 것인지.
이들 고지도들을 보면 백록담 동북쪽에 구봉암이 표기돼 있는데 백록담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백록담을 벗어난 봉우리의 이름일 수도 있어 본래의 구봉암을 찾으려면 고지도뿐 만 아니라 고문헌 등을 통한 다른 방향의 규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엉뚱한 생각에 백록담 굼부리의 봉우리(편의상 봉우리라고 했는데 오름과 같은 봉우리를 말하는 것은 아님)가 아홉 개가 아닌지 헤아려보았다. 한라산 정상 삼각점 지점에서 둥그렇게 둘러쳐진 능선을 따라 찬찬히 세어보니 봉우리 구분이 쉽지 않았지만 얼추 봉우리가 9~10개에 이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맞은편에 보이는 동북쪽 능선은 성판악코스에서 접근하는, 일명 동릉이라고도 부르는데 굴곡없이 둥그런 큰 덩어리 모양을 하고 있어 `봉우리 1'로 간주한 뒤 시계방향으로 차례로 봉우리들을 분간해보았다.
동릉벽이 끝나는 지점에 용머리 모양의 작은 바위가 있는데(그전에는 땅속에 묻혀있었는데 주변 능선이 침식되면서 용머리 암괴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한다), 동쪽을 바라보면서 작은 용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역시 우뚝 솟아 있는 바위라서 `봉우리 2'로 셌다.
그 다음 중간 크기의 둥그런 `봉우리 3'이 위치해 있고, 남코스로 접근하는 능선을 지나 두 개의 `봉우리 4*5'가 남서벽 능선을 형성하고 있다. 혈망봉이나 옥피리소리가 난다는 방암같은 것이 이 곳에 있지 않았을까?.
서벽 1950미터의 한라산 정상지점에는 훼손지 복구 녹화마대로 덮여 있고, 1993년에 설치한 삼각점이 정상지점을 지시하고 있다. 그 옆에 안녕과 행운을 비는 돌멩이들이 하나하나 쌓여 산높이를 더하고 있다. 광복절인 8월 15일 아주 오랜 만에 서북벽을 통해 한라산정상을 밟은 것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고 나서 서벽능선 전체를 `봉우리 6'으로 셌다.
서북벽쪽에도 봉우리가 있다. 봉우리를 구성하는 바위벽 사이 조도(鳥道)가 이어지고 매끈한 바위벽에는 방문객의 낙서뿐만 아니라 글자를 분간할 수 없은 한자의 마애명이 아닌가 싶은 것이 가끔 나타난다. 이 쪽에 `봉우리 7*8'이 짐작되고, 분화구능선 중 고도가 가장 낮은 북쪽능선에 자그마한 `봉우리 9'가 보이니, 한라산 능선 전체에 봉우리 9개가 있는 것으로 셈을 했다. 그렇다면 이 봉우리 9개가 구봉암을 뜻하는 것은 아닌지.......
옛 지도에 표기된 구봉암의 원래의 뜻을 책임성을 담보하지 않은 채 왜곡해버린 크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구봉암을 동북쪽 능선에 우뚝 솟은 여러 개의 웅장한 바위들로 추정하는 분이 있어 더욱 그렇다. 초보자의 생각인 만큼, 독자의 양해를 바란다.
다만 백록담 능선에 위치한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제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어 그 하나하나 이름을 찾아주거나 불러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봉우리들을 분간해보니 재미있고, 분화구의 전체 형상이 지금도 머리속에 남아 있으니 기쁨이 된다. 이 기회에 덧붙친다면 구봉암의 진실이 무엇인지 뿐만 아니라, 김정호는 왜 한라산 위치에 십성대라는 표기를 했을까에 대한 풀이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훼손지 복구용 흙을 나르는 헬리콥터가 발 아래에서 날고 있는 장면에 신기해하면서 하산했다. 장구목 정상을 확실히 확인한 뒤 점점 내려오니 고상돈 케른을 경유하게 되고 그 다음은 삼각봉오름이다. 왕관릉의 장관, 용진각대피소와 탐라계곡의 위용에 감탄사를 연발하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큰 두레왓, 작은두레왓을 넘었다. . 그리고 구상나무 숲과 적송 림을 무사히 헤쳐 하산한 일행들로부터 끈끈한 정을 다시 배운다. 작은두레왓은 결코 작은 산체가 아니다. 의심나면 직접 경험해 볼 일이다.
